중세 유럽을 지배하게 된 기독교는 로마의 박해에서 살아남아 로마의 국교가 되었고 유일한 종교가 되었다. 교황들은 예배의전(禮排儀典)을 재정비하였고 예배의 부속물로서 음악을 중하 여겼다. 음악의 본질을 윤리적이며 수학적 측면에서 설명한 보에티우스(Boethius)의 음악 원리(De institution musica)는 중세 음악의 가장 권위 있는 자료로 전해진다. 중세 음악은 대략 500년경부터 1400년경까지의 음악을 포함하며, 이 시기 음악의 중심은 교회 음악이었다. 단선율 성가 그레고리안 성가가 발달하여 중세 교회 음악의 핵심이었다. 중세 음악은 단선율에서 다성음악으로 발전하였으며, 악보 체계와 음악 이론이 정립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본 글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특징과 역할, 중세 교회 음악의 발전, 다성음악과 기보법, 그리고 중세 음악의 유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그레고리안 성가의 기원과 특징
그레고리안 성가는 중세 초기 기독교 교회 음악의 중심이 된 단선율(모노포니) 성가이다. 이는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서유럽 전역에서 교회 음악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단선율, 무반주, 비세속적이 특징이며, 가사는 라틴어로 되어 있다. 멜로디는 자연스러운 음정 진행을 따르며, 극적인 표현보다는 경건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또한, 교회 선법(모드)이 사용되어 현대 장·단조 체계와는 다른 독특한 음계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신자들에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제공하며, 종교적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졌으나, 9세기 이후 네우마(neuma) 기보법이 발달하면서 서서히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네우마는 그리스어로 '동작(gesture)'이라는 의미이다. 악보가 없었던 초기 성가대는 선창자가 선율의 진행을 손동작으로 표시하였는데 이러한 동작으로 인해 네우마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다양한 성가집이 편찬되며 성가의 통일성과 체계성이 강화되었다.
2. 중세 교회 음악의 발전과 역할
초기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는 성만찬, 시편 낭송, 기도, 성서 낭독으로 이루어진 의식을 가졌는데 이러한 의식이 성무일과(office)와 미사(missa)로 자리 잡았는데 이러한 의식 예배도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경되었다. 성무일과는 교회법에 따라 시과(時果, canonical hour)라고도 하는데 수도사들이 수도원에서 하루 중 일정한 시간에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순서로 구성된다. 그 당시에 전례의식에서 미사와 달리 성무일과에서는 다성부로 노래하는 것으로 보아 종교적인 제약이 크지 않았음을 짐작한다.
미사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중심 의식이었으며, 그레고리안 성가가 미사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미사 음악은 크게 일반 미사(Ordinary)와 고유 미사(Proper)로 나뉘며, 일반 미사는 매일 반복되는 키리에(Kyrie), 글로리아(Gloria), 크레도(Credo), 상투스(Sanctus), 아뉴스 데이(Agnus Dei) 등의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12세기 이후에는 교회 음악이 발전하면서 트로푸스(Tropus, 성가의 확장 기법)와 세쿠엔치아(Sequentia, 연속적인 성가 선율) 등의 기법이 추가되었고, 다양한 형태의 다성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발전은 후에 르네상스 다성음악의 기초가 되었다.
3. 다성음악과 기보법의 발전
9세기 이후, 단선율 성가에서 점차 다성음악(폴리포니)이 발전하였다. 초기 다성음악의 형태는 오르가눔(Organum)으로, 기존 성가 선율 위에 또 다른 멜로디가 추가되는 방식이었다. 이 기법은 노트르담(Notre Dame 악파에 의해 발전하였으며, 레오냉과 페로탱 같은 작곡가들이 활약하였다. 레오냉이 리듬선법을 창안한 것은 아니지만 다성음악에 정량화된 리듬을 사용한 것은 레오냉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성음악의 발전과 함께 음악 기보법도 변화하였다. 초창기에는 네우마(Neuma)라는 단순한 기호가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정교한 사각 음표 기보법이 등장하였다. 이는 음의 길이를 표기하는 리듬 기보법의 기초가 되었다.
콜로뉴(쾰른)의 프랑코(France) 는 1260년경 [정량음악의 기법(Ars cantus mensurabilis)]에서 그가 고안한 기보법 체계를 설명하였는데 다양한 음가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양의 음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듬의 정확한 기보를 위한 규칙을 만들어서 기존하는 음표의 음가를 보다 정확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기보법 체계의 기초를 마련하여 주었다. 14세기 프랑스 대표적 작곡가인 마쇼(Guillaume de Machaut)는 다성 미사곡을 작곡하며 중세 음악의 정점을 찍었다.
4. 중세 음악의 유산과 영향
중세 음악은 이후 서양 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그레고리안 성가와 중세 교회 음악은 서양 음악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교회 선법과 성가의 구조는 르네상스 음악의 토대가 되었다.
둘째, 다성음악의 발전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음악의 기초가 되었으며, 점진적인 화성의 형성과 기보법의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중세 후반기에 등장한 미사곡, 모테트, 마드리갈 등의 음악 형식은 이후 서양 음악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셋째, 중세 음악의 기보법 발전은 현대 악보 체계로 이어졌으며 초기 네우마 기보법에서 시작된 음악 표기법은 점차 정교해해 져서 현대의 오선보 체계로 발전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세 음악의 종교적 특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현대 교회 음악과 성가의 기본적인 형식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현재도 가톨릭 교회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중요한 예배 음악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중세 음악의 소중한 유산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